남성이 페미니즘을 만나면 생기는 일
–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
전 세계적으로 ‘남성’들이 ‘극우화’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연구자와 활동가 들이 ‘남성’에 대한 비판과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정답이 없는 이러한 세상에서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은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대선 후보로 이준석을 뽑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비판하되 입체적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지 사유하고 나아가 동료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한은 남자 고등학교에 가서 정면으로 부딪치며 페미니즘을 가르치고 경직된 문화를 가진 군대에 가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한다. 남성은 페미니즘에 무작정 반발할까? 이한이 만난 남자 고등학생과 군인, 이준석을 뽑은 지인은 반발하기도 하고 페미니즘을 수용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페미니즘이 가닿을 수 있을까? 남성이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친다면, 남성이 페미니즘을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금부터 이한을 만나보자.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마주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단체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 교육, 성평등 교육을 하고 있는 이한입니다. 최근에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 ‘남성’으로서 페미니즘 교육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2015~2016년도에 페미니즘 리부트를 접했습니다. 당시에는 페미니즘이 그냥 좋은 사회운동인가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주변에 같이 지내는 친구들, 당시에 만났던 연인이나 지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목소리를 높이고 결정적으로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통해서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하고 남성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뭔가를 해봐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계기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 이한 님은 단체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단체 소개와 남함페의 주요 활동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남함페는 2017년 독서 모임에서 출발한 작은 페미니즘 단체인데요. 남성 그리고 남성성이라는 주제를 주요 페미니즘 이슈로 삼아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해한 남성 연대를 해체하기 위해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함페에는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현재는 8명의 운영위원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함페의 주요 활동으로는 먼저 교육 활동이 있어요. 페미니즘 교육, 남성성 문화에 대한 교육, 폭력 예방 교육, 성교육 등이 있고 또 하나는 학술 연구가 있습니다. 남성성이 대체 뭘까, 인터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사유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합니다. 마지막으로 집회 연대가 있어요. 여성의 날 혹은 퀴어 퍼레이드 그 외에도 다양한 차별 철폐 운동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또 평등 문화를 만드는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독서 모임, 게임 소모임 같은 활동들이 있습니다.
# 요즘 가장 핫한 남성성 의제를 파헤치다
- 이한 님의 소개와 남함페 단체 소개를 들었는데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한 님이 요즘 관심을 두는 페미니즘 의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대선 직후여서 ‘청년 남성’에 대한 이슈가 가장 뜨겁고 고민되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는 어쨌든 이 ‘이대남’이라고 부르는 이들에 대해서 쉽게 손가락질하거나 아니면 혀를 차거나 아니면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곤 하는데 저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포기할 수 없는 한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이 주제를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함페가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이들을 악마화하고 타자화하는 게 반복된다면 ‘진짜’ 문제를 우리가 놓칠 수 있고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작업부터 어떻게 이들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것인지를 주요 화제로 삼아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 그렇다면 청년 남성 의제와 관련해서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이 있을까요?
일단 첫 번째로는 아무래도 교육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교육을 계속 주된 업무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남성 청소년 특화 성교육이라든가 아니면 폭력 예방 교육을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 혹은 군대 이런 데서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이고요.
또한 남함페에서 주되게 하는 활동으로는 월간 모임이 있습니다. 월간 남함페라고 저희는 부르는데 지난번에 했던 것은 <소년의 시간>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통해 최근 정치적 사회적으로 문제 되는 남성성에 대해 『증명과 변명』의 안희제 저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어요. 지금의 남성 청년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기획 예정인 활동이 있을까요?
이번에 남함페에서 기획하고 있는 건 ‘애증’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해요. 남함페에 자주 의뢰 오는 게 뭐냐면 ‘애인이 페미니즘을 몰라서 걱정’이라는 고민입니다. 반대로 ‘만나는 애인이 페미니스트인데 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자꾸 화를 내고 싸우게 된다.’는 고민도 있고요. 아니면 가족 관계에서 부모, 자녀, 형, 언니, 오빠, 여동생 등과 페미니즘으로 갈등이 점점 깊어지는데 이 고민을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해결 방법도 몰라서 힘들어해요. 그럼 이런 사람들을 잘 모아서 하소연도 좀 같이 하고 어떻게 상대와 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같은 것들을 지금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결국 이상적으로는 주변의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잖아요. 가까운 사람 중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또는 반대로 그 가까운 사람은 페미니스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어요. 한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아니기에 가까운 사이지만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면, 이 갈등과 어려움을 어떻게 부딪치고 더 나은 관계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기획입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북토크
# 전 세계적으로 극우화된 ‘남성’들을 분석하다
- 최근 남성 우경화에 대한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요. 특히 한국에서는 작년 12월 계엄 이후부터 올해 6월 대선까지, 청년 남성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다양한 분석 자료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계엄과 남성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묻기 이전에 사적 인간으로서 활동가 이한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당시 가장 큰 고민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계엄 당일은 너무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일 힘들었던 건 주말마다 계속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에요. 원래도 프리랜서라서 쉬는 날이 규칙적이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엄 이후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주 6일째로 오랜 시간을 살았던 거 같습니다. 시위도 나가고 글도 쓰고 연대 활동도 하고 단체에서 시국에 대한 비판도 함께 공유하고.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또 하필 제일 추울 때 탄핵 집회를 할 수밖에 없어서 다들 너무 고생했고요. 서부지법 폭동 사건과 신남성연대 부상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일어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조금 전에도 말씀해 주셨는데 지난 5월 ‘2025 월간 남함페’에서 안희제 작가님과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극우 남성성에 대한 문제가 점점 심해지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를 기획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일단 <소년의 시간>이 너무 화제여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고 이 드라마 자체가 소년, 남성성, 가부장 문화의 폭력성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사실 저희가 아니더라도 <소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다른 단체들은 많았어요.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도 있고 교육 플랫폼 ‘이탈’도 있고 그럼에도 남함페가 어떻게든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의 남성성 이야기를 듣고 좋은 분석을 접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소년의 삶을 살아오고 내 주변에 있는 남성들과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남함페는 당사자 청년 남성‘들’의 시각으로서 <소년의 시간>을 다뤘다고 할 수 있죠.

남해 상주중학교 강의
- 페이스북이랑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공유가 많이 되어서 저와 제 주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보고 있던 행사고 실제로 주변에서도 많은 지인들이 신청했다고 들었는데요. 남성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만큼 기존 행사보다 참여율이 더 높았나요? 행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주로 나왔나요?
온라인이었는데 50명 넘게 왔었어요. 남함페 최근 행사 중에 제일 많이 모였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와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이 행사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건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었어요. <소년의 시간> 2화처럼 학교에서의 긴장감들, 소년으로 살면서 위계에 대한 눈치가 생기고 그때 본인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내밀하게 이야기했던 게 정말 좋았고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단순히 남성들의 유년 시절에 대한 위로라기보다는 한국 남성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길러지는지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소년으로 남성으로 우리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행사를 진행한 안희제 작가님의 책 제목이 여기에 가장 어울린 논의인 거 같아요. 희재 님의 책이 『증명과 변명』인 이유는 남성들이 자꾸만 자기 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넌 괜찮은 남자야, 열심히 살아야 미래가 보장될 수 있어, 그러니 너의 남성성을 보여주고 계속 그것을 증명해, 라고 말하는 건데, 그런데 그건 계속 미끄러질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이후에는 계속 변명처럼 왜 그걸 성공하지 못했는지 해명해야 하는 거고요. 증명도 변명도 불가능한 그런 남성 청년의 삶들에 대해서 말하고 듣고 싶어서 성별 불문하고 많은 분들이 이번 행사에 오셨던 것 같아요.
- 전 세계적으로 우경화되는 남성과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여성, 이렇게 두 가지로 양분돼서 분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만큼 이 주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그랬기에 이번 대선도 결과가 나오고 곧바로 성별과 나이에 따른 투표 경향에 대한 많은 분석 글이 쏟아졌어요. 2030 남성들의 대략 70%가 김문수, 이준석을 선택했다면 20대 여성 5.9%가 권영국을 지지했습니다. 이렇게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대선 투표 경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사실 전 진짜 너무 충격적이긴 했어요. 이러한 지표를 몰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숫자로 딱 보는 순간 느껴지는 게 있는 거예요. 남함페가 계속해서 주장했던 건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었는데.
20대 남성 대략 25%는 김문수와 이준석에게 표를 주지 않았어요. 다른 연구자 분들이나 활동가 분들의 말도 이해해요. 5.9%의 여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야 된다고. 그런데 남자들에 대한 것도 계속 이야기해야 돼요. 남함페가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되고 지금 이 극우화된 경향도 다양한 각도로 비판해야 하는 것 같아요.한편으로 이준석을 뽑은 2030 남성들이 이준석의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이준석을 뽑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조금 더 다양한 층위를 토대로 분석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이준석에게 투표한 지인에게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계속 물어봤어요. 토론회 봤냐, 이준석이 이런 말을 했다더라, 어떻게 생각하냐 등등. 그 친구는 딱히 토론회도 안 보고 기사도 안 보고 구체적인 관심은 없더라고요. 차라리 김문수와 이재명이 싫어서 제3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 이준석을 고른 느낌이었어요. 긴 글이나 토론회를 보기보다는 SNS의 숏츠나 커뮤니티에서 편집된 글들로 정치를 바라보더라고요. 이 친구의 선택을 제가 지금 해명하는 게 아니에요. 반대로 적극적으로 비판만하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이준석을 고른 이 친구가 어떻게 하면 이번 대선에서 권영국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가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고민한 지점이었어요.

하인리히뵐 재단에서 열린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북토크
# 활동가로서 사적인 어려움을 공유하다
- 지금까지 우경화된 남성성과 성별·나이에 따른 대선 경향을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최근 이한 님의 고민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데요. 프리랜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 변하면 좋겠어요. 갑자기 밤 10시에 전화가 와서 세부 사항은 말해주지 않고 일을 줄 때도 많고요. 이메일로 조금 자세하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적어서 주면 좋겠는데 그런 거 없고 보통 주로 전화나 문자 한 통으로 일거리를 잡게 되는 거 같아요. 또 특히 비용은 제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먼저 제시해주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 외에도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어도 제대로 공유가 안 된 적도 있어서 확인 전화를 먼저 하지 않았다면 헛걸음할 뻔한 적도 있죠. 다들 바쁘신 거 알고 모든 일이 그렇다는 건 알지만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곤 합니다.
- 개인적으로 소망이나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저는 운이 좋게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일도 여기저기서 받고 나름 이 구역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안정성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남함페를 위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매번 회의를 할 때마다 카페에 모여서 하거나 모임 공간을 대여하는데 사무실이 있다면 조금 더 운영위원들과 끈끈해지고 일을 하기도 편할 거 같아요.
그리고 청년 활동가의 다음 진로를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운 좋게 일을 하나둘씩 받고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서 이걸 남함페의 다른 운영위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곤 합니다. 다른 운영위원들의 성평등 교육을 지원해주고 하나의 팀으로서 학교나 군대에 가서 교육을 하고요. 월간 행사나 북토크 같은 행사에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주고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도 경력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가끔은 제 일거리도 부족해서 쉴 때도 있는 만큼 저희를 끌어줄 수 있는 선배 활동가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활동가의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저희끼리 고군분투하는 게 지칠 때도 있고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생길 때도 있어서 그럴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확실히 필요한 거 같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남함페가 많은 지원을 받아 성장하고 다른 청년 활동가들이 이걸로 커리어를 쌓아서 역량을 기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지만요.

- 남함페에 페미니스트 활동가 지원 사업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저희가 지원을 받고 싶지만 받는 게 어렵다면 반대로 저희가 먼저 베푸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 기획한 프로젝트예요. 페미니스트 활동가 지원 사업인데 저희가 어쨌든 응원을 많이 받은 단체이고 과분한 기회를 받기도 해서 한번 우리가 누군가를 지원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 고등학교에 있는 페미니즘 동아리에 100만 원을 지원했어요. 증빙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저희에게 무언가 보여줄 필요도 없고 성과도 필요 없고 어디 좋은 일에 쓰지 않아도 되니, 단지 동아리원끼리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게임도 하고 재밌게 시간 보내는 데 쓰라고 했습니다.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원을 내려보내는 거. 매년 이렇게 여유가 있다면 지원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활동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그런 말을 가장 많이 들어요. 네가 그거 한다고 세상이 변하냐고. 저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변해 왔다고. 백년 전만 해도 신분제가 있었고 30년 전까지만 해도 호주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활동하면서 매년 수많은 것들이 바뀐다는 걸 몸으로 느껴요. 많은 분들이 직접 발로 뛰고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겠죠. 저는 세상이 변한다는 걸 믿습니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이렇게 살고 있고요. 힘들 때도 많고 좌절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변한다고 믿고 계속 가보려고 해요.
인터뷰어 : 박종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그만두었다. 올해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원문 링크 바로가기
남성이 페미니즘을 만나면 생기는 일
–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
전 세계적으로 ‘남성’들이 ‘극우화’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연구자와 활동가 들이 ‘남성’에 대한 비판과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정답이 없는 이러한 세상에서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은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대선 후보로 이준석을 뽑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비판하되 입체적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지 사유하고 나아가 동료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한은 남자 고등학교에 가서 정면으로 부딪치며 페미니즘을 가르치고 경직된 문화를 가진 군대에 가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한다. 남성은 페미니즘에 무작정 반발할까? 이한이 만난 남자 고등학생과 군인, 이준석을 뽑은 지인은 반발하기도 하고 페미니즘을 수용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페미니즘이 가닿을 수 있을까? 남성이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친다면, 남성이 페미니즘을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금부터 이한을 만나보자.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마주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단체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 교육, 성평등 교육을 하고 있는 이한입니다. 최근에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 ‘남성’으로서 페미니즘 교육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2015~2016년도에 페미니즘 리부트를 접했습니다. 당시에는 페미니즘이 그냥 좋은 사회운동인가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주변에 같이 지내는 친구들, 당시에 만났던 연인이나 지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목소리를 높이고 결정적으로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통해서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하고 남성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뭔가를 해봐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계기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 이한 님은 단체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단체 소개와 남함페의 주요 활동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남함페는 2017년 독서 모임에서 출발한 작은 페미니즘 단체인데요. 남성 그리고 남성성이라는 주제를 주요 페미니즘 이슈로 삼아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해한 남성 연대를 해체하기 위해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함페에는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현재는 8명의 운영위원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함페의 주요 활동으로는 먼저 교육 활동이 있어요. 페미니즘 교육, 남성성 문화에 대한 교육, 폭력 예방 교육, 성교육 등이 있고 또 하나는 학술 연구가 있습니다. 남성성이 대체 뭘까, 인터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사유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합니다. 마지막으로 집회 연대가 있어요. 여성의 날 혹은 퀴어 퍼레이드 그 외에도 다양한 차별 철폐 운동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또 평등 문화를 만드는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독서 모임, 게임 소모임 같은 활동들이 있습니다.
# 요즘 가장 핫한 남성성 의제를 파헤치다
- 이한 님의 소개와 남함페 단체 소개를 들었는데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한 님이 요즘 관심을 두는 페미니즘 의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대선 직후여서 ‘청년 남성’에 대한 이슈가 가장 뜨겁고 고민되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는 어쨌든 이 ‘이대남’이라고 부르는 이들에 대해서 쉽게 손가락질하거나 아니면 혀를 차거나 아니면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곤 하는데 저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포기할 수 없는 한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이 주제를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함페가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이들을 악마화하고 타자화하는 게 반복된다면 ‘진짜’ 문제를 우리가 놓칠 수 있고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작업부터 어떻게 이들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것인지를 주요 화제로 삼아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 그렇다면 청년 남성 의제와 관련해서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이 있을까요?
일단 첫 번째로는 아무래도 교육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교육을 계속 주된 업무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남성 청소년 특화 성교육이라든가 아니면 폭력 예방 교육을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 혹은 군대 이런 데서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이고요.
또한 남함페에서 주되게 하는 활동으로는 월간 모임이 있습니다. 월간 남함페라고 저희는 부르는데 지난번에 했던 것은 <소년의 시간>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통해 최근 정치적 사회적으로 문제 되는 남성성에 대해 『증명과 변명』의 안희제 저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어요. 지금의 남성 청년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기획 예정인 활동이 있을까요?
이번에 남함페에서 기획하고 있는 건 ‘애증’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해요. 남함페에 자주 의뢰 오는 게 뭐냐면 ‘애인이 페미니즘을 몰라서 걱정’이라는 고민입니다. 반대로 ‘만나는 애인이 페미니스트인데 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자꾸 화를 내고 싸우게 된다.’는 고민도 있고요. 아니면 가족 관계에서 부모, 자녀, 형, 언니, 오빠, 여동생 등과 페미니즘으로 갈등이 점점 깊어지는데 이 고민을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해결 방법도 몰라서 힘들어해요. 그럼 이런 사람들을 잘 모아서 하소연도 좀 같이 하고 어떻게 상대와 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같은 것들을 지금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결국 이상적으로는 주변의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잖아요. 가까운 사람 중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또는 반대로 그 가까운 사람은 페미니스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어요. 한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아니기에 가까운 사이지만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면, 이 갈등과 어려움을 어떻게 부딪치고 더 나은 관계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기획입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북토크
# 전 세계적으로 극우화된 ‘남성’들을 분석하다
- 최근 남성 우경화에 대한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요. 특히 한국에서는 작년 12월 계엄 이후부터 올해 6월 대선까지, 청년 남성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다양한 분석 자료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계엄과 남성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묻기 이전에 사적 인간으로서 활동가 이한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당시 가장 큰 고민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계엄 당일은 너무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일 힘들었던 건 주말마다 계속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에요. 원래도 프리랜서라서 쉬는 날이 규칙적이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엄 이후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주 6일째로 오랜 시간을 살았던 거 같습니다. 시위도 나가고 글도 쓰고 연대 활동도 하고 단체에서 시국에 대한 비판도 함께 공유하고.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또 하필 제일 추울 때 탄핵 집회를 할 수밖에 없어서 다들 너무 고생했고요. 서부지법 폭동 사건과 신남성연대 부상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일어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조금 전에도 말씀해 주셨는데 지난 5월 ‘2025 월간 남함페’에서 안희제 작가님과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극우 남성성에 대한 문제가 점점 심해지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를 기획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일단 <소년의 시간>이 너무 화제여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고 이 드라마 자체가 소년, 남성성, 가부장 문화의 폭력성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사실 저희가 아니더라도 <소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다른 단체들은 많았어요.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도 있고 교육 플랫폼 ‘이탈’도 있고 그럼에도 남함페가 어떻게든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의 남성성 이야기를 듣고 좋은 분석을 접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소년의 삶을 살아오고 내 주변에 있는 남성들과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남함페는 당사자 청년 남성‘들’의 시각으로서 <소년의 시간>을 다뤘다고 할 수 있죠.
남해 상주중학교 강의
- 페이스북이랑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공유가 많이 되어서 저와 제 주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보고 있던 행사고 실제로 주변에서도 많은 지인들이 신청했다고 들었는데요. 남성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만큼 기존 행사보다 참여율이 더 높았나요? 행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주로 나왔나요?
온라인이었는데 50명 넘게 왔었어요. 남함페 최근 행사 중에 제일 많이 모였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와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이 행사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건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었어요. <소년의 시간> 2화처럼 학교에서의 긴장감들, 소년으로 살면서 위계에 대한 눈치가 생기고 그때 본인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내밀하게 이야기했던 게 정말 좋았고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단순히 남성들의 유년 시절에 대한 위로라기보다는 한국 남성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길러지는지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소년으로 남성으로 우리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행사를 진행한 안희제 작가님의 책 제목이 여기에 가장 어울린 논의인 거 같아요. 희재 님의 책이 『증명과 변명』인 이유는 남성들이 자꾸만 자기 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넌 괜찮은 남자야, 열심히 살아야 미래가 보장될 수 있어, 그러니 너의 남성성을 보여주고 계속 그것을 증명해, 라고 말하는 건데, 그런데 그건 계속 미끄러질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이후에는 계속 변명처럼 왜 그걸 성공하지 못했는지 해명해야 하는 거고요. 증명도 변명도 불가능한 그런 남성 청년의 삶들에 대해서 말하고 듣고 싶어서 성별 불문하고 많은 분들이 이번 행사에 오셨던 것 같아요.
- 전 세계적으로 우경화되는 남성과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여성, 이렇게 두 가지로 양분돼서 분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만큼 이 주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그랬기에 이번 대선도 결과가 나오고 곧바로 성별과 나이에 따른 투표 경향에 대한 많은 분석 글이 쏟아졌어요. 2030 남성들의 대략 70%가 김문수, 이준석을 선택했다면 20대 여성 5.9%가 권영국을 지지했습니다. 이렇게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대선 투표 경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사실 전 진짜 너무 충격적이긴 했어요. 이러한 지표를 몰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숫자로 딱 보는 순간 느껴지는 게 있는 거예요. 남함페가 계속해서 주장했던 건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었는데.
20대 남성 대략 25%는 김문수와 이준석에게 표를 주지 않았어요. 다른 연구자 분들이나 활동가 분들의 말도 이해해요. 5.9%의 여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야 된다고. 그런데 남자들에 대한 것도 계속 이야기해야 돼요. 남함페가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되고 지금 이 극우화된 경향도 다양한 각도로 비판해야 하는 것 같아요.한편으로 이준석을 뽑은 2030 남성들이 이준석의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이준석을 뽑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조금 더 다양한 층위를 토대로 분석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이준석에게 투표한 지인에게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계속 물어봤어요. 토론회 봤냐, 이준석이 이런 말을 했다더라, 어떻게 생각하냐 등등. 그 친구는 딱히 토론회도 안 보고 기사도 안 보고 구체적인 관심은 없더라고요. 차라리 김문수와 이재명이 싫어서 제3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 이준석을 고른 느낌이었어요. 긴 글이나 토론회를 보기보다는 SNS의 숏츠나 커뮤니티에서 편집된 글들로 정치를 바라보더라고요. 이 친구의 선택을 제가 지금 해명하는 게 아니에요. 반대로 적극적으로 비판만하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이준석을 고른 이 친구가 어떻게 하면 이번 대선에서 권영국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가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고민한 지점이었어요.
하인리히뵐 재단에서 열린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북토크
# 활동가로서 사적인 어려움을 공유하다
- 지금까지 우경화된 남성성과 성별·나이에 따른 대선 경향을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최근 이한 님의 고민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데요. 프리랜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 변하면 좋겠어요. 갑자기 밤 10시에 전화가 와서 세부 사항은 말해주지 않고 일을 줄 때도 많고요. 이메일로 조금 자세하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적어서 주면 좋겠는데 그런 거 없고 보통 주로 전화나 문자 한 통으로 일거리를 잡게 되는 거 같아요. 또 특히 비용은 제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먼저 제시해주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 외에도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어도 제대로 공유가 안 된 적도 있어서 확인 전화를 먼저 하지 않았다면 헛걸음할 뻔한 적도 있죠. 다들 바쁘신 거 알고 모든 일이 그렇다는 건 알지만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곤 합니다.
- 개인적으로 소망이나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저는 운이 좋게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일도 여기저기서 받고 나름 이 구역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안정성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남함페를 위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매번 회의를 할 때마다 카페에 모여서 하거나 모임 공간을 대여하는데 사무실이 있다면 조금 더 운영위원들과 끈끈해지고 일을 하기도 편할 거 같아요.
그리고 청년 활동가의 다음 진로를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운 좋게 일을 하나둘씩 받고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서 이걸 남함페의 다른 운영위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곤 합니다. 다른 운영위원들의 성평등 교육을 지원해주고 하나의 팀으로서 학교나 군대에 가서 교육을 하고요. 월간 행사나 북토크 같은 행사에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주고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도 경력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가끔은 제 일거리도 부족해서 쉴 때도 있는 만큼 저희를 끌어줄 수 있는 선배 활동가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활동가의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저희끼리 고군분투하는 게 지칠 때도 있고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생길 때도 있어서 그럴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확실히 필요한 거 같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남함페가 많은 지원을 받아 성장하고 다른 청년 활동가들이 이걸로 커리어를 쌓아서 역량을 기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지만요.
- 남함페에 페미니스트 활동가 지원 사업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저희가 지원을 받고 싶지만 받는 게 어렵다면 반대로 저희가 먼저 베푸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 기획한 프로젝트예요. 페미니스트 활동가 지원 사업인데 저희가 어쨌든 응원을 많이 받은 단체이고 과분한 기회를 받기도 해서 한번 우리가 누군가를 지원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 고등학교에 있는 페미니즘 동아리에 100만 원을 지원했어요. 증빙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저희에게 무언가 보여줄 필요도 없고 성과도 필요 없고 어디 좋은 일에 쓰지 않아도 되니, 단지 동아리원끼리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게임도 하고 재밌게 시간 보내는 데 쓰라고 했습니다.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원을 내려보내는 거. 매년 이렇게 여유가 있다면 지원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활동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그런 말을 가장 많이 들어요. 네가 그거 한다고 세상이 변하냐고. 저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변해 왔다고. 백년 전만 해도 신분제가 있었고 30년 전까지만 해도 호주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활동하면서 매년 수많은 것들이 바뀐다는 걸 몸으로 느껴요. 많은 분들이 직접 발로 뛰고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겠죠. 저는 세상이 변한다는 걸 믿습니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이렇게 살고 있고요. 힘들 때도 많고 좌절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변한다고 믿고 계속 가보려고 해요.
원문 링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