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 정기연재
연말에 우울한 건 나 뿐인가요?
by 이한
🔸27화 <연말에 우울한 건 나 뿐인가요?> by 이한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앞으로 연재될 26화 ~ 30화는 연말을 맞이하는 남함페 5인의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징글벨~ 징글벨~ ♪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요즘이다. 건물은 형형색색 조명과 장식물로 꾸며져 있고 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둔갑하여 사람들을 반긴다. 거리마다 발랄한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 사람들은 열심히 송년회 약속을 잡으며 서로 안부를 묻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는 크리스마스도 있고 새해도 다가오고 해서인지 다들 괜히 설레하는 모양새다. 조금 실수하거나, 늘어져도 “연말이니까 뭐!”하며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들떠있는 분위기에 유독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애석하게도 그게 바로 나다.
@Pixabay
나는 겨울이, 연말 분위기가 싫다. 추위에 몸이 움츠러드는 것도 힘들고 떡국과 함께 먹는 나이도 거북하다. 북적이는 연말 도심을 걷거나 송년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허무함과 씨름했다. 막연히 겨울이 되면서 줄어든 일조량 때문이겠거니 여겼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한 해를 돌이켜 보며 손에 잡히는 뚜렷한 수확 없이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막막함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연말을 맞아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자격지심이거나 그게 아니면 소멸을 떠올리게하는 회백색 계절에서 생의 유한함을 뼈져리게 느끼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이른바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라 하여 연말에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살면서 깊은 우울에 빠져본 적 한 번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화려하고 반짝이는 연말에 본격적으로 우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잇선 '이상한 다이어리'
우울이라는 버릇
우울과의 동행은 사춘기 때부터였다. 그런데 사실 그때 라디오헤드의 ‘Creep’ 같은 노래를 들으며 눈물 짜본 사람이 어디 나 하나 뿐이겠는가. 폭발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다 저 나름의 불행을 안고 사는 시기였던데다가 입시경쟁이라는 비극까지 가미되어 우울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저 지긋지긋한 입시가 끝나고 나면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막상 달라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느끼는 자유의 달콤함은 짧았고 막연한 불안이 늘 안개처럼 짙게 깔려 있었다. 물론 클라이막스는 군대였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깔깔거리고 놀아도, 난생 첫 연애를 통해 말랑말랑한 감정에 취해 있다가도 머지않아 군대에 가면 끝나고 말 시한부 행복이라는 생각에 늘 반쯤 우울에 잠긴 채 살았다. 그 이후에도 여타 국면을 넘어서면 비로소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그처럼 막연한 기대는 붙잡으려 할수록 뜬구름처럼 흩어 사라졌고 우울은 점차 하나의 정체성이 됐다.
울면 안돼? 이성에 사로잡힌 F
우울에 잠겨 있는 습관은 편하고 익숙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남들도 다 이 정도의 우울은 안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자조를 버릇 삼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균열은 아주 작고 일상적인 일들로 시작됐다.
군대 전역 후 대학에 복학하고 어영부영 학교를 다니다 이대로 시간을 낭비하고 보낼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이 엄습했다. 아무래도 그럴 때는 견문을 넓힌다는 핑계로 해외도피 하는게 대학생들의 주된 코스였는데, 나는 교환학생을 하기에는 공부가 짧았고 해외여행을 다니기에는 통장이 얇았다. 포기해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해외봉사를 통해 6개월 간 해외에 거주하며 색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까지 했던 온갖 경험을 원기옥처럼 모아 자의식을 비대하게 부풀려 박카스 광고에 나오는 청춘인 것 마냥 푸르고 상큼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봉사단체 특성상 남자가 그리 많지 않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그 덕에 6개월 간 태국 시골 한 고등학교에서 두 번 다시 못할 경험을 쌓았다. 과장 좀 보태서 이목구비 뚜렷한 바퀴벌레도 만나고 구글 번역기 돌린 서툰 태국어로 고등학생들에게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언어로 안되는 건 몸으로 때우는 편이라 초3 때 이후로 안해본 태권도도 하고 부모님 앞에서도 보여주지 않은 춤… 비슷한 재롱도 부렸다. 흔히 봉사하면 떠올리는 땀흘리는 모습도 있었지만 그보다 문화교류에 가까운 형태라 태국의 문화를 배우고 함께 소통하며 다신 없을 추억을 쌓았다.
다시는 안 볼 사진을 신중하게 찍는 중이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6개월은 생각보다 짧았다. 미루고 외면해도 헤어지는 날은 성큼성큼 다가왔고 우리는 서로를 위한 작별 편지, 선물을 준비했다. 그렇게 헤어지는 마지막 날, 그간 우리를 돌봐주신 선생님, 정들었던 학생들과 부둥켜 안고 눈물바다가 되어 기약 없는 이별을 맞았다. 이상하게 나만 빼고 말이다. 나는 그 와중을 기록하겠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정리가 끝나고 떠나오는 버스에서도, 한국을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은 뼈가 시리게 추운 겨울이었다. 들고 간 겨울 옷이 없어서 얇은 긴팔에 가디건, 바람막이를 걸치고 6개월치 짐을 담은 이민가방을 질질 끌며 그간 비워둔 냉골같은 반지하 자취방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몰려오는 피로인지 슬픔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참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 시동 꺼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데…
나는 늘 미련이 많은 성격이었다. 아니,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곧 있을 기쁨의 부재를 예비하며 미련부터 갖는 스타일이었다. 태국에서도, 일상에서도 늘 그랬다. 이제는 그것이 나의 어쩔 수 없는 성격일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세상 희로애락 다양한 감정에서 우울 역시 필수불가결한 감정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왜 어떤 감정 앞에서는 그토록 움츠러들고 도피하는지 질문하게 됐다. 태국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이 밀려들 때마다 회피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별을 마치 미루어둔 숙제처럼 해치우고 밀려드는 감정을 피하려 미친듯이 다른 일에 파고들었다.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태국에서는 (고작 스물 몇 살이었지만) 팀원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남성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지 싶다.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마다, ‘운다고 무엇이 달라지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이성이 작용한다고 또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 편이 조금 더 편하고 익숙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말에 동의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야 우냐’에는 발끈하게 됐으니까.
@야매토끼 전설의 ‘야 우냐’ 짤
그렇게 찾아온 공황발작
보통 전자기기도 한 번에 고장이 나서 셧다운되기보다 그 전까지 여러번의 징후를 남기다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인간인 척 코스프레하다가 한 번에 무너졌다. 증상은 달리는 버스에서 시작됐다. 갑작스럽게 터진 일에 닥쳐온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결하고 말겠노라고 선언한 후 머리 속에서 해야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귀가하던 길이었다. 지독하게 꼬인 실을 푸는 것처럼 엉켜버린 일의 실마리를 찾으려 고민하던 차에 머리가 하얘지며 숨이 턱 막혔다. ‘버스 기사님께 응급실에 데려다달라고 해야하나?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나? 달리던 와중인데 내릴 수 있을까? 창 밖으로 뛰어내리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나도 이성적이지 않은,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연달아 스쳐지나가며 가슴을 옥죄였다. 미디어에서 봤던 공황 경험담을 통해 이게 공황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한껏 느긋한 성격의 친구는 지금의 상황을 전하는 나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껄껄 웃으며 느린 목소리로 괜찮다고 앞에 닥친 문제들도 자신이 같이 해결해주겠노라고 말했다. 뻔한 위로였음에도 한결 마음이 놓이며 조금씩 숨이 돌아왔다. 이어 정신과 유경험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증상을 전하고 병원을 추천받았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우습게도 병원에 가는 내내, ‘이제 괜찮은데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공황까지는 아니고 그냥 가벼운 스트레스일 뿐인데 내가 유난 떠는 건가?’ 싶은 마음에 우물쭈물 하게 됐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전달받은 의사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와 온화한 미소로 “공황증상이네요”라고 말하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공황과 우울은 활동가의 감기일 뿐?
그 이후, 나는 또 다시 쿨한 척 “공황과 우울은 활동가의 감기죠~”하며 능청스레 말하고 다녔지만 가방 구석구석 손 닿는 곳에 공황약을 조금씩 소분해서 넣어놓고 다니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인정했다.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돌봄을 구하며 상담을 받았다. “안돼요. 싫어요. 못해요.”를 잘 말하는 어른으로 거듭나리라 다짐했고 부정적인 감정을 잘 말하거나 표현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슬픈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잘 보지 못한다. 그 만한 감정을 쓸 여력이 없다고 느껴지고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글러먹은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최근 같이 살던 혈연이 분가하여 반려묘를 데려갔는데 아침, 밤마다 애처롭게 반려묘 이름을 부르며, ‘나는 이제 고양이도 없어’를 외치지만 슬픈 마음이 커지기 전에 세수를 하거나 게임으로 빠져든다.
@Pixabay
이렇게 참고 참아온 감정이 언젠가 곪아 터지지 않을까 두렵다. 주변을 돌아봐도 그렇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표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2.2배 높다고 한다. 성별로 따져보면 남자 9,093명, 여자 4,102명으로 남자가 2.2배 높다. 의아하게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우울증 환자는 여성 63만 334 명, 남성 30만 3,147명으로 여성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추측컨데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거나 도움 청하지 못하고 더 빈번하게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리라. 돌이켜보면 어떤 점에서는 나도 그랬다. 지금은 나의 미숙한 감정표현이 우리사회 성별고정관념과 가부장적 남성성의 영향 때문임을 알게 됐지만, 이를 알지 못했을 때에는 해석할 수 없는 감정이 울분처럼 켜켜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스스럼 없이 감정표현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공감은 커녕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구냐’며 질투섞인 뾰족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감정표현에 대한 시샘이자 동시에 이성을 우위에 두고 감정은 평가절하하는 문화의 답습이었다.
남성을 돌보는 남성이 필요해
나는 이제 공감하는 법부터 다시 배우려고 한다. 너무 오래 이렇게 살아서 얼마나 더 나아질 지, 나아질 수는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대로 살아갈 수 없으니 하나씩, 조금씩 바꿔 보려고 한다.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차분히 바라보고 또 표현하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주변 남성을 돌보는 남성이 되고 싶다. 내가 받았던 돌봄을 기억하면서 불행배틀이나 시기어린 핀잔 대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단지 우쭈쭈하자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해야 한다면, 남성들이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남성을 돌보는 남성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연말에는 주변에 안부를 물으며 그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다들 안녕히 잘 지내고 있니?”
얼룩소 정기연재
연말에 우울한 건 나 뿐인가요?
by 이한
🔸27화 <연말에 우울한 건 나 뿐인가요?> by 이한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앞으로 연재될 26화 ~ 30화는 연말을 맞이하는 남함페 5인의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징글벨~ 징글벨~ ♪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요즘이다. 건물은 형형색색 조명과 장식물로 꾸며져 있고 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둔갑하여 사람들을 반긴다. 거리마다 발랄한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 사람들은 열심히 송년회 약속을 잡으며 서로 안부를 묻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는 크리스마스도 있고 새해도 다가오고 해서인지 다들 괜히 설레하는 모양새다. 조금 실수하거나, 늘어져도 “연말이니까 뭐!”하며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들떠있는 분위기에 유독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애석하게도 그게 바로 나다.
@Pixabay
나는 겨울이, 연말 분위기가 싫다. 추위에 몸이 움츠러드는 것도 힘들고 떡국과 함께 먹는 나이도 거북하다. 북적이는 연말 도심을 걷거나 송년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허무함과 씨름했다. 막연히 겨울이 되면서 줄어든 일조량 때문이겠거니 여겼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한 해를 돌이켜 보며 손에 잡히는 뚜렷한 수확 없이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막막함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연말을 맞아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자격지심이거나 그게 아니면 소멸을 떠올리게하는 회백색 계절에서 생의 유한함을 뼈져리게 느끼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이른바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라 하여 연말에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살면서 깊은 우울에 빠져본 적 한 번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화려하고 반짝이는 연말에 본격적으로 우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잇선 '이상한 다이어리'
우울이라는 버릇
우울과의 동행은 사춘기 때부터였다. 그런데 사실 그때 라디오헤드의 ‘Creep’ 같은 노래를 들으며 눈물 짜본 사람이 어디 나 하나 뿐이겠는가. 폭발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다 저 나름의 불행을 안고 사는 시기였던데다가 입시경쟁이라는 비극까지 가미되어 우울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저 지긋지긋한 입시가 끝나고 나면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막상 달라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느끼는 자유의 달콤함은 짧았고 막연한 불안이 늘 안개처럼 짙게 깔려 있었다. 물론 클라이막스는 군대였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깔깔거리고 놀아도, 난생 첫 연애를 통해 말랑말랑한 감정에 취해 있다가도 머지않아 군대에 가면 끝나고 말 시한부 행복이라는 생각에 늘 반쯤 우울에 잠긴 채 살았다. 그 이후에도 여타 국면을 넘어서면 비로소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그처럼 막연한 기대는 붙잡으려 할수록 뜬구름처럼 흩어 사라졌고 우울은 점차 하나의 정체성이 됐다.
울면 안돼? 이성에 사로잡힌 F
우울에 잠겨 있는 습관은 편하고 익숙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남들도 다 이 정도의 우울은 안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자조를 버릇 삼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균열은 아주 작고 일상적인 일들로 시작됐다.
군대 전역 후 대학에 복학하고 어영부영 학교를 다니다 이대로 시간을 낭비하고 보낼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이 엄습했다. 아무래도 그럴 때는 견문을 넓힌다는 핑계로 해외도피 하는게 대학생들의 주된 코스였는데, 나는 교환학생을 하기에는 공부가 짧았고 해외여행을 다니기에는 통장이 얇았다. 포기해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해외봉사를 통해 6개월 간 해외에 거주하며 색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까지 했던 온갖 경험을 원기옥처럼 모아 자의식을 비대하게 부풀려 박카스 광고에 나오는 청춘인 것 마냥 푸르고 상큼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봉사단체 특성상 남자가 그리 많지 않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그 덕에 6개월 간 태국 시골 한 고등학교에서 두 번 다시 못할 경험을 쌓았다. 과장 좀 보태서 이목구비 뚜렷한 바퀴벌레도 만나고 구글 번역기 돌린 서툰 태국어로 고등학생들에게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언어로 안되는 건 몸으로 때우는 편이라 초3 때 이후로 안해본 태권도도 하고 부모님 앞에서도 보여주지 않은 춤… 비슷한 재롱도 부렸다. 흔히 봉사하면 떠올리는 땀흘리는 모습도 있었지만 그보다 문화교류에 가까운 형태라 태국의 문화를 배우고 함께 소통하며 다신 없을 추억을 쌓았다.
다시는 안 볼 사진을 신중하게 찍는 중이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6개월은 생각보다 짧았다. 미루고 외면해도 헤어지는 날은 성큼성큼 다가왔고 우리는 서로를 위한 작별 편지, 선물을 준비했다. 그렇게 헤어지는 마지막 날, 그간 우리를 돌봐주신 선생님, 정들었던 학생들과 부둥켜 안고 눈물바다가 되어 기약 없는 이별을 맞았다. 이상하게 나만 빼고 말이다. 나는 그 와중을 기록하겠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정리가 끝나고 떠나오는 버스에서도, 한국을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은 뼈가 시리게 추운 겨울이었다. 들고 간 겨울 옷이 없어서 얇은 긴팔에 가디건, 바람막이를 걸치고 6개월치 짐을 담은 이민가방을 질질 끌며 그간 비워둔 냉골같은 반지하 자취방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몰려오는 피로인지 슬픔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참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 시동 꺼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데…
나는 늘 미련이 많은 성격이었다. 아니,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곧 있을 기쁨의 부재를 예비하며 미련부터 갖는 스타일이었다. 태국에서도, 일상에서도 늘 그랬다. 이제는 그것이 나의 어쩔 수 없는 성격일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세상 희로애락 다양한 감정에서 우울 역시 필수불가결한 감정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왜 어떤 감정 앞에서는 그토록 움츠러들고 도피하는지 질문하게 됐다. 태국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이 밀려들 때마다 회피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별을 마치 미루어둔 숙제처럼 해치우고 밀려드는 감정을 피하려 미친듯이 다른 일에 파고들었다.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태국에서는 (고작 스물 몇 살이었지만) 팀원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남성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지 싶다.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마다, ‘운다고 무엇이 달라지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이성이 작용한다고 또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 편이 조금 더 편하고 익숙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말에 동의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야 우냐’에는 발끈하게 됐으니까.
@야매토끼 전설의 ‘야 우냐’ 짤
그렇게 찾아온 공황발작
보통 전자기기도 한 번에 고장이 나서 셧다운되기보다 그 전까지 여러번의 징후를 남기다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인간인 척 코스프레하다가 한 번에 무너졌다. 증상은 달리는 버스에서 시작됐다. 갑작스럽게 터진 일에 닥쳐온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결하고 말겠노라고 선언한 후 머리 속에서 해야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귀가하던 길이었다. 지독하게 꼬인 실을 푸는 것처럼 엉켜버린 일의 실마리를 찾으려 고민하던 차에 머리가 하얘지며 숨이 턱 막혔다. ‘버스 기사님께 응급실에 데려다달라고 해야하나?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나? 달리던 와중인데 내릴 수 있을까? 창 밖으로 뛰어내리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나도 이성적이지 않은,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연달아 스쳐지나가며 가슴을 옥죄였다. 미디어에서 봤던 공황 경험담을 통해 이게 공황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한껏 느긋한 성격의 친구는 지금의 상황을 전하는 나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껄껄 웃으며 느린 목소리로 괜찮다고 앞에 닥친 문제들도 자신이 같이 해결해주겠노라고 말했다. 뻔한 위로였음에도 한결 마음이 놓이며 조금씩 숨이 돌아왔다. 이어 정신과 유경험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증상을 전하고 병원을 추천받았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우습게도 병원에 가는 내내, ‘이제 괜찮은데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공황까지는 아니고 그냥 가벼운 스트레스일 뿐인데 내가 유난 떠는 건가?’ 싶은 마음에 우물쭈물 하게 됐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전달받은 의사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와 온화한 미소로 “공황증상이네요”라고 말하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공황과 우울은 활동가의 감기일 뿐?
그 이후, 나는 또 다시 쿨한 척 “공황과 우울은 활동가의 감기죠~”하며 능청스레 말하고 다녔지만 가방 구석구석 손 닿는 곳에 공황약을 조금씩 소분해서 넣어놓고 다니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인정했다.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돌봄을 구하며 상담을 받았다. “안돼요. 싫어요. 못해요.”를 잘 말하는 어른으로 거듭나리라 다짐했고 부정적인 감정을 잘 말하거나 표현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슬픈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잘 보지 못한다. 그 만한 감정을 쓸 여력이 없다고 느껴지고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글러먹은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최근 같이 살던 혈연이 분가하여 반려묘를 데려갔는데 아침, 밤마다 애처롭게 반려묘 이름을 부르며, ‘나는 이제 고양이도 없어’를 외치지만 슬픈 마음이 커지기 전에 세수를 하거나 게임으로 빠져든다.
@Pixabay
이렇게 참고 참아온 감정이 언젠가 곪아 터지지 않을까 두렵다. 주변을 돌아봐도 그렇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표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2.2배 높다고 한다. 성별로 따져보면 남자 9,093명, 여자 4,102명으로 남자가 2.2배 높다. 의아하게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우울증 환자는 여성 63만 334 명, 남성 30만 3,147명으로 여성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추측컨데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거나 도움 청하지 못하고 더 빈번하게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리라. 돌이켜보면 어떤 점에서는 나도 그랬다. 지금은 나의 미숙한 감정표현이 우리사회 성별고정관념과 가부장적 남성성의 영향 때문임을 알게 됐지만, 이를 알지 못했을 때에는 해석할 수 없는 감정이 울분처럼 켜켜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스스럼 없이 감정표현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공감은 커녕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구냐’며 질투섞인 뾰족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감정표현에 대한 시샘이자 동시에 이성을 우위에 두고 감정은 평가절하하는 문화의 답습이었다.
남성을 돌보는 남성이 필요해
나는 이제 공감하는 법부터 다시 배우려고 한다. 너무 오래 이렇게 살아서 얼마나 더 나아질 지, 나아질 수는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대로 살아갈 수 없으니 하나씩, 조금씩 바꿔 보려고 한다.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차분히 바라보고 또 표현하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주변 남성을 돌보는 남성이 되고 싶다. 내가 받았던 돌봄을 기억하면서 불행배틀이나 시기어린 핀잔 대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단지 우쭈쭈하자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해야 한다면, 남성들이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남성을 돌보는 남성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연말에는 주변에 안부를 물으며 그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다들 안녕히 잘 지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