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연재 소식
이번 주 여성신문 <벌거벗은 남자들> 연재는 '정신건강과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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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려요 
칼럼 보러가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10/0000127937?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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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정신질환을 앓는 남성들은 병원을 찾지 않는다. 통계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해 발간한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문제 인식 후 즉시 치료'로 응답한 여성은 45.7%인 반면, 남성은 38.4%로 남성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대신 남성의 절반 이상(50.2%%)이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고 답했다.(서울시, 2025 서울시민 정신건강 인식 및 실태조사) 여성 응답자가 가장 많이 선택한 대처 방식이 '가족·지인에게 털어놓는 것'(46.9%)이었다는 점과도 대비된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겪는 정신적인 고통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말을 별로 해본 경험이 없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거 다 운동을 안 해서 그래!'라든지, '능력의 부족을 정신질환으로 포장하지 마라'는 선굵은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듯 했다. 또 내 고통을 말한 결과, 나약하고 불안정한 사람으로 인식될까 염려스러웠다. 그것은 내가 믿음직한 사람, 리더십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혹 괜히 밝혔다가, 좋은 제안의 기회를 잃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이 증상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중략)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처럼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더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아픔을 진정으로 수용했으면 한다. 자신을 구제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평등은 남자도 울 수 있는 것'이라는 명제가 있다. 이는 단지 남자가 무조건 펑펑 울라는 뜻이 아니다. 남자가 자신의 슬픔과 취약성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남성 뿐만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을 안고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신질환으로 결정지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치료에 주저하지 않는 사회가 성큼 다가왔음을 정신건강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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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앓는 남성들은 병원을 찾지 않는다. 통계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해 발간한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문제 인식 후 즉시 치료'로 응답한 여성은 45.7%인 반면, 남성은 38.4%로 남성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대신 남성의 절반 이상(50.2%%)이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고 답했다.(서울시, 2025 서울시민 정신건강 인식 및 실태조사) 여성 응답자가 가장 많이 선택한 대처 방식이 '가족·지인에게 털어놓는 것'(46.9%)이었다는 점과도 대비된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겪는 정신적인 고통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말을 별로 해본 경험이 없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거 다 운동을 안 해서 그래!'라든지, '능력의 부족을 정신질환으로 포장하지 마라'는 선굵은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듯 했다. 또 내 고통을 말한 결과, 나약하고 불안정한 사람으로 인식될까 염려스러웠다. 그것은 내가 믿음직한 사람, 리더십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혹 괜히 밝혔다가, 좋은 제안의 기회를 잃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이 증상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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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처럼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더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아픔을 진정으로 수용했으면 한다. 자신을 구제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평등은 남자도 울 수 있는 것'이라는 명제가 있다. 이는 단지 남자가 무조건 펑펑 울라는 뜻이 아니다. 남자가 자신의 슬픔과 취약성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남성 뿐만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을 안고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신질환으로 결정지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치료에 주저하지 않는 사회가 성큼 다가왔음을 정신건강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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