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남성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대선, 차별에 투표하니 남성살이 좀 좋아졌습니까. 여성을 배제하고,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하여 무엇을 얻었습니까.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며 독단적인 구태의 정치가 만들어낸 결과는 결국 차별의 심화와 12.3 계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평등에 투표하십시오.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가 남성에게 위험한 사회가 될리 없습니다.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남성을 차별할리 없습니다. 약자가 존중받는 사회에서 남성이 존중받지 못할리 없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성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살아있는 존재가 존중받고 평등한 세상을 지지합니다.
#차별에 투표하지 않습니다 #평등에 투표합니다 #우리는 차별에 반대합니다
[그래서, 남성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여성가족부 폐지’ 이 일곱 글자에서 시작된 폭력적 남성성의 폭주는 12.3 계엄을 거쳐 4월 4일 탄핵을 통해서야 비로소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2025년 지금,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적대와 혐오가 아닌, 평등과 진보를 통해 모든 존재가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말 한마디가 떠오릅니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당시 많은 국민의 마음을 관통했던 문장이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중략)
자랑스러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매일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도 운이 좋게 그 40명에 내가 포함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런 대한민국을 두고 세계는 “South Korea is over”이라고 말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0.78명, 즉 1명이 채 되지 않는 현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매일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자살로 죽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건 당연한데, 어느 서울시의원은 괄약근에 힘을 주는 ‘쪼이고 댄스’가 해답이라고 말하고 보건복지부는 그에게 장관상을 줍니다. 여전히 세상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새로운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들에게는 대안이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김문수 후보의 ‘여성 희망복무제 도입’, 이준석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처럼 싸움 붙이는 식의 정책만 눈에 들어옵니다.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마저 별도의 성평등 공약을 두지 않는 건 매우 실망스러울 따름입니다. 마지막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드러난 이준석 후보의 망언은 우리 정치가 아직도 여성혐오라는 저열한 타성에 젖어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를 앞세워 여성을 비난하고 페미니스트를 공격할 때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하셨습니까? 누군가를 때리는 일이 우리의 권익을 향상하는 일이 된답니까? 나치가 유대인을 차별할 때 독일인의 권익이 올라갔답니까? 아닙니다. 권익은 오히려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비로소 함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생기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권리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노인과 어린이, 유아차를 모는 사람과 짐이 많은 사람까지 모두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평등한 사회는 이런 모습이지 않습니까.
(중략)
당신들의 적은 동료 여성 시민이 아닙니다. 당신의 삶은 여성 때문에 어려워진 것이 아닙니다. 학창 시절 당신이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건 ‘엄석대’ 때문입니다. 대학에 간 당신이 억지로 술을 들이켜야 했던 건 남성적인 권위주의 때문입니다. 군복무를 원하지 않는 당신이 군대에 간 건 남성에게 부당한 책임을 떠넘기는 가부장적인 국가와 제도 때문입니다. 여성이 당신에게 술을 강권하고, 군대로 떠민 것이 아닙니다. 그만 착각하고 왜곡된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외칩시다.
“모든 대선 후보는 들으라! 성평등 공약 없이 표 없다! 광장의 목소리 없이 내란 청산 없다! 동료 남성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분리’가 아니라 ‘우리’를 외치는 후보, ‘차별’이 아닌 ‘평등’에 투표하자!”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하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 영화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中
#차별에 투표하지 않습니다 #평등에 투표합니다 #우리는 차별에 반대합니다
2025년 5월 29일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그래서, 남성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대선, 차별에 투표하니 남성살이 좀 좋아졌습니까. 여성을 배제하고,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하여 무엇을 얻었습니까.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며 독단적인 구태의 정치가 만들어낸 결과는 결국 차별의 심화와 12.3 계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평등에 투표하십시오.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가 남성에게 위험한 사회가 될리 없습니다.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남성을 차별할리 없습니다. 약자가 존중받는 사회에서 남성이 존중받지 못할리 없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성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살아있는 존재가 존중받고 평등한 세상을 지지합니다.
#차별에 투표하지 않습니다 #평등에 투표합니다 #우리는 차별에 반대합니다
[그래서, 남성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여성가족부 폐지’ 이 일곱 글자에서 시작된 폭력적 남성성의 폭주는 12.3 계엄을 거쳐 4월 4일 탄핵을 통해서야 비로소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2025년 지금,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적대와 혐오가 아닌, 평등과 진보를 통해 모든 존재가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말 한마디가 떠오릅니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당시 많은 국민의 마음을 관통했던 문장이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중략)
자랑스러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매일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도 운이 좋게 그 40명에 내가 포함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런 대한민국을 두고 세계는 “South Korea is over”이라고 말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0.78명, 즉 1명이 채 되지 않는 현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매일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자살로 죽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건 당연한데, 어느 서울시의원은 괄약근에 힘을 주는 ‘쪼이고 댄스’가 해답이라고 말하고 보건복지부는 그에게 장관상을 줍니다. 여전히 세상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새로운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들에게는 대안이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김문수 후보의 ‘여성 희망복무제 도입’, 이준석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처럼 싸움 붙이는 식의 정책만 눈에 들어옵니다.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마저 별도의 성평등 공약을 두지 않는 건 매우 실망스러울 따름입니다. 마지막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드러난 이준석 후보의 망언은 우리 정치가 아직도 여성혐오라는 저열한 타성에 젖어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를 앞세워 여성을 비난하고 페미니스트를 공격할 때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하셨습니까? 누군가를 때리는 일이 우리의 권익을 향상하는 일이 된답니까? 나치가 유대인을 차별할 때 독일인의 권익이 올라갔답니까? 아닙니다. 권익은 오히려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비로소 함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생기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권리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노인과 어린이, 유아차를 모는 사람과 짐이 많은 사람까지 모두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평등한 사회는 이런 모습이지 않습니까.
(중략)
당신들의 적은 동료 여성 시민이 아닙니다. 당신의 삶은 여성 때문에 어려워진 것이 아닙니다. 학창 시절 당신이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건 ‘엄석대’ 때문입니다. 대학에 간 당신이 억지로 술을 들이켜야 했던 건 남성적인 권위주의 때문입니다. 군복무를 원하지 않는 당신이 군대에 간 건 남성에게 부당한 책임을 떠넘기는 가부장적인 국가와 제도 때문입니다. 여성이 당신에게 술을 강권하고, 군대로 떠민 것이 아닙니다. 그만 착각하고 왜곡된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외칩시다.
“모든 대선 후보는 들으라! 성평등 공약 없이 표 없다! 광장의 목소리 없이 내란 청산 없다! 동료 남성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분리’가 아니라 ‘우리’를 외치는 후보, ‘차별’이 아닌 ‘평등’에 투표하자!”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하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 영화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中
#차별에 투표하지 않습니다 #평등에 투표합니다 #우리는 차별에 반대합니다
2025년 5월 29일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