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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미스터 페미니즘] 조금 다른 선택을 하는 남자들
2026-09-18

🗞️ 여성신문 연재 소식 🗞️
[미스터 페미니즘] 조금 다른 선택을 하는 남자들 입니다!
학창시절,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축구를 나갔어야 했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있는 줄도 몰랐고 또래문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한 번 벗어나고 보니, 그곳에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더라구요. 더 많은 이들이 용기있게 남성연대의 동조압력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실천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보았습니다!
🔗 전문 보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10/0000140077?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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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은 뛰지 않아.”
학창시절 축구하러 가자고 소환 될 때마다 나는 늘 저렇게 대꾸하며 교실에서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물론 족보를 살펴본 적은 없다. 아니, 애초 집에 족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흔한 조상님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으니 양반은 못되리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렇게까지 이야기한 까닭은 축구에 미쳐있는 남자 청소년들 사이에서 벗어나면서도 지기 싫은 마음 때문이었다.
축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 영화, 드라마 같은 문화생활도 언제나 ‘대세’가 있었다. 어떤 유행에는 무사히 편승 했지만 어떤 유행은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고 거북해 하면서도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그 동조압력이 기괴하리만큼 강하게 작동했다. 그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 뿐인데, ‘게이냐’, ‘계집애냐’, ‘떼라’ 등의 조롱과 폭언이 뒤따랐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것이야 말로 ‘남성됨’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타자를 배제함으로써만 증명할 수 있고 유지될 수 있는 남성성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가소롭고 우습지만, 친구가 인생의 전부이던 청소년기에는 그것이 곧 헌법이고 경찰이었다.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건 대단한 논리, 명분이 아니었다. 의외로 그저 눈 한 번 찔끔 감고 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지지면 충분했다. 양반은 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내뱉고나니 막상 내 주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 모여 새로운 무리를 이룰 수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탁구, 당구를 치거나 집 앞 놀이터에서 온종일 수다를 떨며 놀았다. 남자임을 증명하는 시도에서 벗어나면 나락으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막상 내려놓고 보니 더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