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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정기연재]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 서로 반려할 수 있을까?

2023-09-11

얼룩소 정기연재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 서로 반려할 수 있을까?

by 이한


🔸17화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 서로 반려할 수 있을까?> by 이한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벌거 벗은 남자들’ 이번 주제는 바로 ‘반려’다.

다양한 반려를 둘러싸고 남함페 활동가 4인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펼쳐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섹슈얼리티를 이야기 하다 말고 갑자기 왠 반려? 싶을 수 있겠지만, 사실 반려는 제법 섹슈얼한 단어다. 일단 흔히 이야기하는 반려인부터 그렇다. 단지 ‘여자친구’, ‘남자친구’, ‘애인’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미래를 기약하게 만드는 그 진지함이 섹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가하면 이런 섹시함을 떠올리며 ‘반려가전’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바로 바이브레이터를 비롯한 자위기구를 부르는 애칭이다. 그 밖에도 반려동물, 반려가구, 반려식물 등 다양한 반려 파생 이야기가 있지만, 개중에서도 오늘 꺼내볼 주제는 바로 내가 꿈꾸는 반려의 삶이다. 


971955c0ad614.png@픽사베이



성평등은 모르겠고, 저출생이 문제라고? 기꺼이 망하지 뭐

엄마, 아빠, 누나, 나로 구성된 지극히 평범한 이른바 4인 ‘정상가족’ 아래서 자라난 나는 으레 그렇듯 공부하고 대학가고 취업한 이후 가정을 이뤄서 사는 것을 보편의 삶으로 여기며 자랐고 서른즈음이면 떡 두꺼비 같은 자녀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는 그저 튼실한 반려묘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딱히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갖겠다는 생각이 없다. 사실 이제는 이런 선택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세상이다. 통계청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인 가구는 전체 중 33.4%로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개중에서도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44.3%라고 하니 앞으로도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f605fa8cd5746.png@성남시 '솔로몬(SOLO MON)의 선택'


출생률 0.78의 세상은 이런 ‘문제’를 가만 두고볼 수가 없어서 다양한 분석으로 이 현상을 풀어내고 해결하고자 한다. 개중에는 청년들이 결혼에 드는 비용과 집값 마련이 어려워서 그런 것일 거라며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각종 지원 정책을 펼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만남의 기회가 없기 때문일 거라며, 지자체가 나서서 만남을 주선하는 웃지 못할 정책이 나오기도 했다. 허나 현실은 ‘정부야 아무리 꼬셔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에 가깝다. 그동안 ‘정말 중요한 건 바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라고 무수히 외쳐보았으나, 공공기관과 정치인들은 들은체 만체 하며 죽어라 딴청 피우고 있으니, 무슨 애정으로, 얼마나 더 애국하겠다고 그 문제를 구구절절 설명해야하나 싶다. 그래서 이제는 망해가는 세상, 불구경이나 하면서 흥 돋굴 음악 플레이 리스트나 짜볼까 하는 심정이다. 



그래도 관뚜껑 닫을 때까지 반려는 필요하니까 

다시 반려 이야기로 돌아와, 세상 망하는 것은 어찌할 지 모르겠고 신이나 내세에 기대를 걸 인물도 못되다보니 그저 믿고 의지할 거라곤 남루한 내 몸뚱이 하나 뿐인데, 그마저도 하루하루 늙고 병들어가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혼자 외롭게 죽고 싶’지는 않은데 당장 ‘혈연가족’ 외에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는 않는 현실에 가만있을 수만은 없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른 반려의 삶을 꾸리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다. 



815f7c8be16da.png@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페이스북 페이지



가장 큰 인사이트가 된 건 바로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이하 ‘비비’)이다. 김희경 선생님의 책 ‘에이징 솔로’를 통해 알게 된 비비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허무맹랑하거나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얼마든지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보여주는 모범 사례 같았다. 블로그에 소개된 비비는 이렇다. 


“우리 단체는 비혼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동시에 누구에게나 안성맞춤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습니다. 비혼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 누군가와 안전하게 연결되고 싶은 사람, 비혼으로서 뭔가 해보고 싶은 사람, 일단 와서 이야기 나눠봅시다.”
_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블로그 소개 중에서



혈연가족보다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반려의 삶 

책 ‘에이징 솔로’에 따르면 비비는 규칙이나 회비, 정기적 모임 같은 의무 없이 이웃이라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께 운동하고 글 쓰고 부모 돌봄이나 주거 독립 같은 관심사로 토론하며 느슨하면서도 또 지속가능하게 연결되어 있다. 비비의 다양한 모습 중에서도 가장 부러웠던 건, 한 동네에 살면서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을 때 서슴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받을 수 있다는 지점이었다. 약 10년이 조금 못되게 독립생활을 하면서 다른 것은 많이 익숙하고 능숙해졌지만, 여전히 혼자 아플때의 서러움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독립생활을 이어가는 주변 친구들의 삶도 비슷하다. 한 번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갑작스레 죽게 되면, 함께 사는 반려 동물이 굶을 게 걱정되니 아침에 안부 묻는 프로젝트라도 하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아프고 노쇠해지는 몸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공포다. 덮어놓고 외면할 게 아니라, 혈연가족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반려지인들과의 연결을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장 지금도 아프지만 혈연가족에 걱정 끼치기는 싫고, 멀리 있어서 도움 청하기도 어려울 때, 주변에 있는 친구가 가져다 주는 죽과 약은 엄청난 위로다. 



물론 혹자는 혈연이 아닌 존재에 돌봄을 맡기는 게 믿음직스럽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혈연’만이 돌봄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동기일까?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는 돌봄의 편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의 노인 및 아동 돌봄 가족조사’ 연구에 따르면, 주돌봄자는 딸이 35%, 혈연 아닌 며느리가 36.7%이고 돌봄 전담자의 성별은 여성이 85% 남성이 15%였다. 여성에게 독박돌봄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은 혈연을 빙자한 가부장제가 여성의 독박돌봄을 강제하게 하면서도 가족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장하게 만드는 요소라 의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위 연구조사에 따르면 돌봄 전담자들은 일주일 평균 6.3일, 하루 평균 7.7시간을 돌봄에 사용하면서 심리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비비처럼 혈연이 아니더라도 반려하는 이웃한 공동체가 서로 함께 돌보는 것이 성평등 하면서도 오히려 더 지속가능한 돌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직까지 막연하고 더 밀도 높은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돌봄이 혈연가족에 떠맡겨질 때보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돌봄 공동체와 반려의 삶이 늘어났을 때 그와 관련한 논의도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재밌고 행복하고 싶어서 

내가 꿈꾸는 반려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돌봄이라는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를 먼저 다루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혈연가족 밖 반려의 삶을 꿈꾸는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사실 그보다 더 핵심적인 이유는 그게 더 재밌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 삶을 돌아봤을 때, 가장 그립고 재미있었던 순간은 친구와 함께 자취를 했던 때와 해외봉사에서 함께 간 동료들과 같이 살았을 때다. 적당한 거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붕어빵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수다 떨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게 그렇게 좋았다. 당장 멀지않은 곳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친구는 오래된 2층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데, 자신이 거주하는 2층 방 한 칸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외국 손님이 드나들고 1층은 쉐어오피스로 운영되어 사무실을 쓰는 손님들이 드나든다. 덕분에 이 친구는 독일, 영국, 브라질 할 것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 일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과 가볍게 안부를 묻고 인사만 하며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드라마를 같이 보고 밥을 나눠 먹으며 식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덕에 치안이 확보되는 것은 덤이다.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면서,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가 하룻동안 나눈 대화의 전부일 때가 많은 나로서는 이런 삶이 너무 흥미롭고 매력적이지만 여성전용인지라 먼발치에서 부러워만 하고 있다. 



72ac981ea0952.png@픽사베이



남성도 함께 반려의 삶을 꿈꿔볼 수 있을까? 

물론 반려의 삶이라는게 마냥 낭만적이고 재밌지만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다 못해 대학생 때 팀 프로젝트 과제만으로도 지옥이었는데, 삶의 일부를 함께하는 게 쉽기만할 리 없다. 하지만 또 혈연가족이라고 그게 마냥 쉽기만했을까? 설령 그랬다 한들, 그 이유는 혈연이라서가 아니라 암묵적이고 일방적이기만 했던 누군가의 돌봄 덕분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이 과정을 수면 위로 올려 함께 골머리 앓는 것은 기꺼이 해볼만한 일이고 해야만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특히 나는 더 많은 남성들이 이런 반려의 삶을 함께 꿈꿨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연대에 뿌리깊게 자리한 호모포비아부터 돌봄을 여성의 역할로 치부하며 등한시하는 태도 등 넘어야할 고비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미 많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바느질을 비롯한 빨래, 다림질, 청소 등 반려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을 배우고 경험까지 쌓아왔지 않은가? 오히려 이런 점에서 반려의 삶에 적합한 환경은 이미 조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 꽃을 피울 차례다. 


함께 반려하며 살아가는 삶에 도도독… 동료가 되자! 


26aa7ee4e8b48.png@르세라핌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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