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 여성신문 정기연재 시즌2 <미스터 페미니즘>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미스터 페미니즘>에서는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일상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남성성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하고 상상해보고자 합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지난 2월 잇달아 보도된 안희정의 행보를 주제로 안희정과 전 잔나비 멤버 유영현의 극명하게 다른 행보를 대비시켜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썼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안 전 지사가 이미 처벌 받았고, 형기를 마쳤으니 이제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가해자의 처벌에 관심을 쏟는 것은 얼핏보면 우리 사회의 정의 실현을 위해 바람직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처벌은 국가가 정한 법률을 어긴 것에 대해 가해자를 징벌하는 구조다.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진술과 증거를 남기는 일종의 도구이자 처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건 조사와 재판이 잘 이루어져 가해자가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사법 정의를 실현했다는 명분은 국가와 관련 종사자들이 가져갈 뿐 피해자는 소모된다. 피해 회복도 그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 된다.
안 전 지사의 형기가 끝났는지가 아니라, 김지은씨가 충분히 피해로부터 회복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사안을 둘러싼 판단의 주요 근거 역시 피해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형사법적 처리에만 매몰된 응보적 문제 해결 방식에서는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도 관심 없다. 그러나 범죄 행위에 대해 책임 지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해자는 가해 이전의 상태를 고려해 관계적, 공동체적 회복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중략)
범죄로 인한 피해의 회복에 중점을 둔 회복적 정의가 부재한 세태 속에서, 유영현의 경우는 귀중한 사례다. 잔나비의 입장문처럼, 죄의 경중은 피해를 입은 이의 마음에 달려있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의 여부가 가해에 대한 책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가 안착된 사회는 요원하기만 하다.
(중략)
죄송함은 누구의 몫이고,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가. 누구의 목소리로 당당해지자고 하는가. 안희정과 유영현의 흑과 백에 가까운 대비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도리인 염치(廉恥)에 대해 물어야 한다.
👉클릭 :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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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 여성신문 정기연재 시즌2 <미스터 페미니즘>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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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글에서는 지난 2월 잇달아 보도된 안희정의 행보를 주제로 안희정과 전 잔나비 멤버 유영현의 극명하게 다른 행보를 대비시켜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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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지사가 이미 처벌 받았고, 형기를 마쳤으니 이제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가해자의 처벌에 관심을 쏟는 것은 얼핏보면 우리 사회의 정의 실현을 위해 바람직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처벌은 국가가 정한 법률을 어긴 것에 대해 가해자를 징벌하는 구조다.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진술과 증거를 남기는 일종의 도구이자 처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건 조사와 재판이 잘 이루어져 가해자가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사법 정의를 실현했다는 명분은 국가와 관련 종사자들이 가져갈 뿐 피해자는 소모된다. 피해 회복도 그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 된다.
안 전 지사의 형기가 끝났는지가 아니라, 김지은씨가 충분히 피해로부터 회복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사안을 둘러싼 판단의 주요 근거 역시 피해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형사법적 처리에만 매몰된 응보적 문제 해결 방식에서는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도 관심 없다. 그러나 범죄 행위에 대해 책임 지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해자는 가해 이전의 상태를 고려해 관계적, 공동체적 회복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중략)
범죄로 인한 피해의 회복에 중점을 둔 회복적 정의가 부재한 세태 속에서, 유영현의 경우는 귀중한 사례다. 잔나비의 입장문처럼, 죄의 경중은 피해를 입은 이의 마음에 달려있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의 여부가 가해에 대한 책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가 안착된 사회는 요원하기만 하다.
(중략)
죄송함은 누구의 몫이고,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가. 누구의 목소리로 당당해지자고 하는가. 안희정과 유영현의 흑과 백에 가까운 대비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도리인 염치(廉恥)에 대해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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