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집게손'를 빌미로 사이버 린치를 가했던 일부 네티즌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뉴스를 접하며 기분이 좋았지만 여전히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남초 커뮤니티와 일부 유튜버를 보며 내가 있는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며 글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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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성이 그렇지 않음을 알면서도 '집게손 테러', '서부지법 난동' 등의 사건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부터 2030 남성들은 '문제적 남성'이 됐다. 특히 일부 언론은 2030 여성과 비교하며 보수적인 남성성으로 부각시킨다. 광장에 나와 민주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능력주의와 공정성을 얘기하며 억울함과 분노로 포장된 남성들은 서울 서부지법 폭동에 참여한 주요 참여자가 되어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문제아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와 구분짓기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문제는 남성이 남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성'으로 자라오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며,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공정성과 능력주의를 통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강조한 사회 구조를 지적함이 옳다. 하지만 사회 구조의 변화는 쉽지 않은 일이며, 많은 자원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사회 구조가 아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젊은 남성'에게 향하고 이들을 특정한 이념에 빠져든 존재 혹은 단순히 비난 받아야 될 대상으로 생각하며 구분짓는다.
일부 청년 남성의 극단적 '목소리'가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대변한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특정 이념에 빠져든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젊은 남성에게는 '돌봄과 연대의 언어'가 없다는 점을 얘기할 수 있다.
페미니즘 언어로 개인의 성차별 경험을 '우리의 문제'로 언어화한 여성들과 달리 젊은 남성들의 언어에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과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공정성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하는 시장주의 언어만 가득하다. 생존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 생계 부양자와 강한 남성성을 강요받는 젊은 남성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다. 이들이 성찰과 변화를 위해서는 자기 삶의 아픔을 주체적으로 표현할 언어를 찾을 수 있도록 제안할 필요가 있다.
2월 4일 '집게손'를 빌미로 사이버 린치를 가했던 일부 네티즌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뉴스를 접하며 기분이 좋았지만 여전히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남초 커뮤니티와 일부 유튜버를 보며 내가 있는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며 글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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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성이 그렇지 않음을 알면서도 '집게손 테러', '서부지법 난동' 등의 사건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부터 2030 남성들은 '문제적 남성'이 됐다. 특히 일부 언론은 2030 여성과 비교하며 보수적인 남성성으로 부각시킨다. 광장에 나와 민주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능력주의와 공정성을 얘기하며 억울함과 분노로 포장된 남성들은 서울 서부지법 폭동에 참여한 주요 참여자가 되어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문제아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와 구분짓기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문제는 남성이 남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성'으로 자라오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며,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공정성과 능력주의를 통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강조한 사회 구조를 지적함이 옳다. 하지만 사회 구조의 변화는 쉽지 않은 일이며, 많은 자원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사회 구조가 아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젊은 남성'에게 향하고 이들을 특정한 이념에 빠져든 존재 혹은 단순히 비난 받아야 될 대상으로 생각하며 구분짓는다.
일부 청년 남성의 극단적 '목소리'가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대변한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특정 이념에 빠져든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젊은 남성에게는 '돌봄과 연대의 언어'가 없다는 점을 얘기할 수 있다.
페미니즘 언어로 개인의 성차별 경험을 '우리의 문제'로 언어화한 여성들과 달리 젊은 남성들의 언어에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과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공정성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하는 시장주의 언어만 가득하다. 생존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 생계 부양자와 강한 남성성을 강요받는 젊은 남성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다. 이들이 성찰과 변화를 위해서는 자기 삶의 아픔을 주체적으로 표현할 언어를 찾을 수 있도록 제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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