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 정기연재
이성친구, 동성연애, 외않되?
by 연웅
🔸14화 <이성친구, 동성연애, 외않되> by 연웅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트위터
“동성이기에 우정으로 넘겼던 사랑과, 이성이기에 사랑으로 착각한 많은 순간”
요즘 유튜브를 보면, ‘여자친구의 남사친’이나 ‘남자친구의 여사친’ 이야기를 하며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냐’는 말과 함께 화를 내는 유튜버의 쇼츠가 자주 보인다.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분 공감 가는 대목도 있다. 내 애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질투하거나, 관계에 대해 걱정하는 일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때로는 그런 질투와 견제가 연애에 작은 긴장감을 불어넣어 자칫 느슨해질 수도 있을 연애 전선을 다시금 팽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의 ‘깻잎 논쟁’부터 이어져 온 흐름을 보면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애인의 이성친구, 그렇게 불편할 일일까.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사친과 남사친’에 대해 먼저 얘기하면 좋겠다.
@MBC<나혼자산다>
@MBC<나혼자산다>
미안한데, 이성 간에 친구는 있어. 누가 자꾸 그걸 망칠 뿐.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거다. 나에겐 사실, 본격적으로 플러팅 하기 전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는 말 정도로 느껴지지만, 그런 개인적 감상은 잠시 접어두고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자.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은, 밤이 되어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 한잔에 하지 않을 말도 괜히 하게 되는 그런 말랑말랑한 순간. 그 순간에 이성친구 사이에 요상한 분위기가 흐르고, 스킨십이 동반될 수도 있는 언어적·비언어적 마음 교환을 통한 관계 변화가 일어난다는 가설을 의미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아닐 수도 있다. 이 문장을 두고 두 가지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친구 관계를 지키고 싶은데, 밤과 술로 인해 원치 않는 관계 변화(당황스러운 고백)을 겪어야 하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호시탐탐 연애로의 관계 변화를 노리고 있다가 밤과 술이라는 이벤트에 기대어 본인의 환상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이다.
우선,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에 적극 동의하면서, 동시에 즐겨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이해관계는 아닐 것으로 사료된다. 여사친 혹은 남사친의 고백을 걱정하기에, 아쉽게도 당신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라면, ‘이성친구와 친구로 오래 잘 지내는 법’을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경험에서 배웠을 테니까. 또한,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는 없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사용을 지양할 수밖에 없다. 그 말을 밑밥 삼은 고백 공격이 자꾸 당신의 소중한 이성친구 관계를 망가뜨렸을테니까.
즉,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을 즐겨하면서, 정작 주위에 이성친구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고, “여자친구의 남사친(남자친구의 여사친)은 분명 내 여자친구(남자친구)를 노리고 있을 거야!”라고 외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술과 밤에 기대 본인의 환상이 일어나길 바라는 편이지, 친구 관계를 지키길 바라는 편은 아닐 것이라 나는 얼추 확신한다.
@tvN <유퀴즈온더블럭>
@tvN <유퀴즈온더블럭>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아닐 수도 있다. 함부로 재단하면 그건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다.
차라리 “밤과 술이 있는 한, 아니 그냥 인간 두 명 갖다 놓으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언제든 주의하자. 특히 밤에 술 마시면 더 주의하고.”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 당연히 이성 간에만 어떤 '썸띵'이 벌어질 거라고 확신하느냐는 말이다. 내 애인은 두말 할 것 없는 무조건적인 이성애자일 거라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경우의 수를 모두 열어놓고 따지자면, 내가 이성애 연애 중일 때 내 애인의 동성친구를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이성애인 포지션은 내가 차지했으니, 비어있는 동성애인 포지션을 누가 공략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질투와 견제를 해야겠다면 그 편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밤과 술'이 아닌, ‘낮과 커피’ 앞에서는 주의할 필요가 없을까? 나의 경우엔, 친구들이랑 가끔 ‘밤’에 ‘술'을 마시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소중한 주말 낮 시간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누군가와 커피를 기울이며 속닥인다면 ‘썸띵'을 생각해야 하는 편이다. ‘밤과 술'을 조심하라는 문장은 오히려 이런 ‘선호'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밤과 술’을 핑계로 취약해진 사람에 대한 부주의한 플러팅을 정당화 하는 해로운 문장이 아닐까. ‘밤과 술’로 서로가 취약해졌을 땐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배려'를 꺼내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솔직히 답답하지 않은가. 이성이랑 친구한다고 어쩌고, 동성이랑 연애한다고 어쩌고, 연애 안 하면 안 한다고 어쩌고, 연애하면 또 그거대로 이러쿵 저러쿵, 결혼하면 한다고 어쩌고, 결혼 안 하면 안 한다고 어쩌고, 섹스하면 또 그거대로 이러쿵 저러쿵, 섹스 안 하면 안 한다고 어쩌고. 아주 사람을 가만 두질 않는 세상이다. 좀 내비둬라. 자기가 알아서 어련히 잘 하겠지. 왜 ‘이성친구’와 ‘동성연애’를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세상에 없는 것처럼 만들고 싶어 할까. 시비를 걸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의 불안과 염려가 향하는 방향이 타인을 손쉽게 재단하는 데 쓰일 뿐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에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으니 함께 점검하고 고민해보자는 의미다.
@트위터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랑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손해!
이런 일련의 일들은 결국 이성애 중심, 연애 중심 사회가 빚어낸 웃지 못할 시트콤이다. ‘호모포비아’라는 파국을 곁들인. 이 시트콤은 우리의 세계를 가둔다. 더 좁은 관계 속에서, 더 작은 상상력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수많은 사랑 중에 고작 이성애 하나, 수많은 친구 중에 고작 동성친구 하나로 사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해 너무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이다. 참 ‘자유’롭지 못한 삶이다.
내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정말 다양한 사랑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세상은 몇 곱절은 더 넓어졌다. 그 이후의 삶은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관계들에 선입견 없이 솔직하게 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내 삶은 더 많고 다양한 친구들이 북적거리고, 때로는 근사하고 다정한 로맨스가 펼쳐지는,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처럼 빛났다.
나는 ‘관계’에서 ‘자유’를 느꼈다. 혼자서도 편안했고, 둘이서는 안온했으며, 여럿이서는 그렇게 들뜨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혼자인 내 모습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동성친구와 오붓하게 카페에 가고 쇼핑을 가는 것이 낯설지 않았고, 이성친구와 디스코드를 켜고 밤새 통화하며 게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여럿일 땐 더욱 성별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각각의 관계와 서로 간의 관계성, 거기에서 나오는 시너지와 에너지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내게 준 선물이자 축복이다.
@영화 <어벤져스> 포스터
민망한 ‘호모포비아’ 시트콤
이러한 이성애 중심 사회가 빚어낸 웃지 못할 시트콤 속에서, ‘호모포비아’라는 파국은 사실 더 심각한 부조리극이 되어 다가온다.
마블의 영화와 <어벤져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아예 모르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랑 받았고,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시리즈 영화다. 특히 영화에 출연하는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와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는 한국 사람들도 정말 좋아하는 무비 스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모포비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벤져스> 시청 금지 운동을 벌여야 한다. 크리스 에반스의 친동생 스콧 에반스는 커밍아웃한 게이이며, 크리스 에반스는 인터뷰에서 ‘호모포비아’들을 향해 ‘idiots’라고 말하며, “사회적 변화를 두려워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은 공룡처럼 죽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크 러팔로 역시 실제 게이 당사자 배우인 맷 보머와 함께 퀴어 영화를 촬영한 전적이 있다. 더군다나 마블과 디즈니 역시 최근 <이터널스>에 첫 게이 슈퍼히어로를 그리며 동성애 배우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담기도 했다. “어떻게 이성 간 친구를 하고, 동성 간 연애를 할 수 있냐”는 당신, “마블과 디즈니는 불편해서 어떻게 봐?”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 또한 <이미테이션 게임>과 <파워오브도그> 작품에서 동성애자를 연기했다. 따지고 보니, “어떻게 동성 간 연애를 할 수 있냐”는 당신에게 외국 영화는 전부 불편할 수 있겠다. 앞으로 외국 영화는 보지 마시라. 아, 그렇다고 한국 영화가 괜찮은 것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 동성애 코드가 꽤 있다고 인터뷰에서 직접 말한 바 있다. 당신에겐 영화 감상 자체가 어려울 수 있겠다. ‘호모포비아’를 자처하면서 어떻게 이런 영화계를 그냥 두고 볼 수 있는가. 평생 영화 시청 금지 운동에 나서길 바란다.
@애플 홈페이지
아, 이럴 수가. 혹시 노트북이나 핸드폰, 어디 제품 쓰는지 물어봐도 될까? 만약 애플이면 얼른 바꿀 것을 권한다. 애플의 CEO인 팀 쿡은 커밍아웃한 게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게이인 것이 자랑스럽고,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애플 로고인 ‘베어 문 사과’는 컴퓨터를 처음 고안한 개발자 앨런 튜링의 상징이라는 소문이 있다.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로 차별받다 죽은 비극적인 인물이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컴퓨터 인공지능의 개발이 어려웠을 정도니, 핸드폰이나 컴퓨터 사용도 지양하는 편이 좋겠다. 당신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MBC<무한도전>
왜 이런 말장난을 늘어놓냐고? 앞선 장난 반 진담 반의 문장들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느꼈다면, 동시에 ‘호모포비아’ 역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일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성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살지 않으려면 이성과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어야 한다. 이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날이 갈수록 그 이성들은 당신을 어떠한 대상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친구나 동료로서 믿음직한 사람이 아닐테니까. 사람들은 친구도 동료도 될 수 없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다.
동성과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를 것이다. 다만, 당신의 세계에 동성애가 없을 거라 확신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치 닫힌 창문 한 쪽을 마저 열듯 더 환한 빛이 당신의 세계를 비추고 더 넓은 풍경이 보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아는 것을 의심하고, 나를 돌아보는 일은 인간의 숭고한 과업이다. 이성애만 있던 당신의 세상에 동성애와 양성애, 범성애와 무성애가 다양하게 자리 잡는다면, 무지개 빛깔로 다채로워질 당신의 세상엔 더 많은 사랑이 더 자주 머물 것이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이 ‘새로운 세상’을. 더 넓고 자유로운 세계를. 환대받는 축제의 물결 속에 서있으면 나는 이 모두와 친구가 된 것처럼 느끼며 마음이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 차오른다. 이 뭉클한 순간을 당신도 꼭 느꼈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에 혐오보다 사랑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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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 정기연재
이성친구, 동성연애, 외않되?
by 연웅
🔸14화 <이성친구, 동성연애, 외않되> by 연웅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동성이기에 우정으로 넘겼던 사랑과, 이성이기에 사랑으로 착각한 많은 순간”
요즘 유튜브를 보면, ‘여자친구의 남사친’이나 ‘남자친구의 여사친’ 이야기를 하며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냐’는 말과 함께 화를 내는 유튜버의 쇼츠가 자주 보인다.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분 공감 가는 대목도 있다. 내 애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질투하거나, 관계에 대해 걱정하는 일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때로는 그런 질투와 견제가 연애에 작은 긴장감을 불어넣어 자칫 느슨해질 수도 있을 연애 전선을 다시금 팽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의 ‘깻잎 논쟁’부터 이어져 온 흐름을 보면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애인의 이성친구, 그렇게 불편할 일일까.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사친과 남사친’에 대해 먼저 얘기하면 좋겠다.
미안한데, 이성 간에 친구는 있어. 누가 자꾸 그걸 망칠 뿐.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거다. 나에겐 사실, 본격적으로 플러팅 하기 전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는 말 정도로 느껴지지만, 그런 개인적 감상은 잠시 접어두고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자.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은, 밤이 되어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 한잔에 하지 않을 말도 괜히 하게 되는 그런 말랑말랑한 순간. 그 순간에 이성친구 사이에 요상한 분위기가 흐르고, 스킨십이 동반될 수도 있는 언어적·비언어적 마음 교환을 통한 관계 변화가 일어난다는 가설을 의미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아닐 수도 있다. 이 문장을 두고 두 가지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친구 관계를 지키고 싶은데, 밤과 술로 인해 원치 않는 관계 변화(당황스러운 고백)을 겪어야 하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호시탐탐 연애로의 관계 변화를 노리고 있다가 밤과 술이라는 이벤트에 기대어 본인의 환상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이다.
우선,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에 적극 동의하면서, 동시에 즐겨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이해관계는 아닐 것으로 사료된다. 여사친 혹은 남사친의 고백을 걱정하기에, 아쉽게도 당신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라면, ‘이성친구와 친구로 오래 잘 지내는 법’을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경험에서 배웠을 테니까. 또한,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는 없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사용을 지양할 수밖에 없다. 그 말을 밑밥 삼은 고백 공격이 자꾸 당신의 소중한 이성친구 관계를 망가뜨렸을테니까.
즉, “밤과 술이 있는 한 이성 간에 친구란 없다.”는 말을 즐겨하면서, 정작 주위에 이성친구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고, “여자친구의 남사친(남자친구의 여사친)은 분명 내 여자친구(남자친구)를 노리고 있을 거야!”라고 외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술과 밤에 기대 본인의 환상이 일어나길 바라는 편이지, 친구 관계를 지키길 바라는 편은 아닐 것이라 나는 얼추 확신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아닐 수도 있다. 함부로 재단하면 그건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다.
차라리 “밤과 술이 있는 한, 아니 그냥 인간 두 명 갖다 놓으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언제든 주의하자. 특히 밤에 술 마시면 더 주의하고.”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 당연히 이성 간에만 어떤 '썸띵'이 벌어질 거라고 확신하느냐는 말이다. 내 애인은 두말 할 것 없는 무조건적인 이성애자일 거라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경우의 수를 모두 열어놓고 따지자면, 내가 이성애 연애 중일 때 내 애인의 동성친구를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이성애인 포지션은 내가 차지했으니, 비어있는 동성애인 포지션을 누가 공략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질투와 견제를 해야겠다면 그 편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밤과 술'이 아닌, ‘낮과 커피’ 앞에서는 주의할 필요가 없을까? 나의 경우엔, 친구들이랑 가끔 ‘밤’에 ‘술'을 마시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소중한 주말 낮 시간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누군가와 커피를 기울이며 속닥인다면 ‘썸띵'을 생각해야 하는 편이다. ‘밤과 술'을 조심하라는 문장은 오히려 이런 ‘선호'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밤과 술’을 핑계로 취약해진 사람에 대한 부주의한 플러팅을 정당화 하는 해로운 문장이 아닐까. ‘밤과 술’로 서로가 취약해졌을 땐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배려'를 꺼내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솔직히 답답하지 않은가. 이성이랑 친구한다고 어쩌고, 동성이랑 연애한다고 어쩌고, 연애 안 하면 안 한다고 어쩌고, 연애하면 또 그거대로 이러쿵 저러쿵, 결혼하면 한다고 어쩌고, 결혼 안 하면 안 한다고 어쩌고, 섹스하면 또 그거대로 이러쿵 저러쿵, 섹스 안 하면 안 한다고 어쩌고. 아주 사람을 가만 두질 않는 세상이다. 좀 내비둬라. 자기가 알아서 어련히 잘 하겠지. 왜 ‘이성친구’와 ‘동성연애’를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세상에 없는 것처럼 만들고 싶어 할까. 시비를 걸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의 불안과 염려가 향하는 방향이 타인을 손쉽게 재단하는 데 쓰일 뿐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에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으니 함께 점검하고 고민해보자는 의미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랑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손해!
이런 일련의 일들은 결국 이성애 중심, 연애 중심 사회가 빚어낸 웃지 못할 시트콤이다. ‘호모포비아’라는 파국을 곁들인. 이 시트콤은 우리의 세계를 가둔다. 더 좁은 관계 속에서, 더 작은 상상력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수많은 사랑 중에 고작 이성애 하나, 수많은 친구 중에 고작 동성친구 하나로 사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해 너무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이다. 참 ‘자유’롭지 못한 삶이다.
내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정말 다양한 사랑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세상은 몇 곱절은 더 넓어졌다. 그 이후의 삶은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관계들에 선입견 없이 솔직하게 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내 삶은 더 많고 다양한 친구들이 북적거리고, 때로는 근사하고 다정한 로맨스가 펼쳐지는,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처럼 빛났다.
나는 ‘관계’에서 ‘자유’를 느꼈다. 혼자서도 편안했고, 둘이서는 안온했으며, 여럿이서는 그렇게 들뜨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혼자인 내 모습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동성친구와 오붓하게 카페에 가고 쇼핑을 가는 것이 낯설지 않았고, 이성친구와 디스코드를 켜고 밤새 통화하며 게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여럿일 땐 더욱 성별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각각의 관계와 서로 간의 관계성, 거기에서 나오는 시너지와 에너지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내게 준 선물이자 축복이다.
민망한 ‘호모포비아’ 시트콤
이러한 이성애 중심 사회가 빚어낸 웃지 못할 시트콤 속에서, ‘호모포비아’라는 파국은 사실 더 심각한 부조리극이 되어 다가온다.
마블의 영화와 <어벤져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아예 모르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랑 받았고,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시리즈 영화다. 특히 영화에 출연하는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와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는 한국 사람들도 정말 좋아하는 무비 스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모포비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벤져스> 시청 금지 운동을 벌여야 한다. 크리스 에반스의 친동생 스콧 에반스는 커밍아웃한 게이이며, 크리스 에반스는 인터뷰에서 ‘호모포비아’들을 향해 ‘idiots’라고 말하며, “사회적 변화를 두려워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은 공룡처럼 죽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크 러팔로 역시 실제 게이 당사자 배우인 맷 보머와 함께 퀴어 영화를 촬영한 전적이 있다. 더군다나 마블과 디즈니 역시 최근 <이터널스>에 첫 게이 슈퍼히어로를 그리며 동성애 배우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담기도 했다. “어떻게 이성 간 친구를 하고, 동성 간 연애를 할 수 있냐”는 당신, “마블과 디즈니는 불편해서 어떻게 봐?”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 또한 <이미테이션 게임>과 <파워오브도그> 작품에서 동성애자를 연기했다. 따지고 보니, “어떻게 동성 간 연애를 할 수 있냐”는 당신에게 외국 영화는 전부 불편할 수 있겠다. 앞으로 외국 영화는 보지 마시라. 아, 그렇다고 한국 영화가 괜찮은 것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 동성애 코드가 꽤 있다고 인터뷰에서 직접 말한 바 있다. 당신에겐 영화 감상 자체가 어려울 수 있겠다. ‘호모포비아’를 자처하면서 어떻게 이런 영화계를 그냥 두고 볼 수 있는가. 평생 영화 시청 금지 운동에 나서길 바란다.
아, 이럴 수가. 혹시 노트북이나 핸드폰, 어디 제품 쓰는지 물어봐도 될까? 만약 애플이면 얼른 바꿀 것을 권한다. 애플의 CEO인 팀 쿡은 커밍아웃한 게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게이인 것이 자랑스럽고,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애플 로고인 ‘베어 문 사과’는 컴퓨터를 처음 고안한 개발자 앨런 튜링의 상징이라는 소문이 있다.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로 차별받다 죽은 비극적인 인물이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컴퓨터 인공지능의 개발이 어려웠을 정도니, 핸드폰이나 컴퓨터 사용도 지양하는 편이 좋겠다. 당신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왜 이런 말장난을 늘어놓냐고? 앞선 장난 반 진담 반의 문장들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느꼈다면, 동시에 ‘호모포비아’ 역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일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성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살지 않으려면 이성과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어야 한다. 이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날이 갈수록 그 이성들은 당신을 어떠한 대상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친구나 동료로서 믿음직한 사람이 아닐테니까. 사람들은 친구도 동료도 될 수 없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다.
동성과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를 것이다. 다만, 당신의 세계에 동성애가 없을 거라 확신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치 닫힌 창문 한 쪽을 마저 열듯 더 환한 빛이 당신의 세계를 비추고 더 넓은 풍경이 보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아는 것을 의심하고, 나를 돌아보는 일은 인간의 숭고한 과업이다. 이성애만 있던 당신의 세상에 동성애와 양성애, 범성애와 무성애가 다양하게 자리 잡는다면, 무지개 빛깔로 다채로워질 당신의 세상엔 더 많은 사랑이 더 자주 머물 것이다.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이 ‘새로운 세상’을. 더 넓고 자유로운 세계를. 환대받는 축제의 물결 속에 서있으면 나는 이 모두와 친구가 된 것처럼 느끼며 마음이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 차오른다. 이 뭉클한 순간을 당신도 꼭 느꼈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에 혐오보다 사랑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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