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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정기연재] 나의 퀴어한 친구에게

2023-08-09

얼룩소 정기연재

나의 퀴어한 친구에게

by 태환


🔸15화 <나의 퀴어한 친구에게> by 태환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우리 모두의 주변에 있는 듯 없는 존재가 살고 있다. 일상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존재, 정상성과 표준에서 탈락된 존재. 그들은 스스로를 ‘퀴어’라 부른다. 이번 글을 통해 필자가 삶 속에서 만나 왔던 퀴어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때론 당황스럽게, 때론 가슴 떨리게 만났던 그들의 모습은 상처 위에 난 딱지처럼 필자의 삶에 아로새겨져 있다. 지우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미 나의 삶에 깊이 박혀버린 그들에게 편지 한통씩을 썼다. 편한 공간에서 읽길.


편지 1. 용기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안녕 J야?

어제 방학했는데 오늘 편지 쓰려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네. 지금 바로 핸드폰 켜서 카톡하면 되는 걸 이렇게 수고스럽게 적고 있다니!

음 사실 편지 쓴 이유는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너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지? 안 그런 척 하지만 너 은근히 티 많이 나. 쉬는 시간마다 일부러 나랑 눈도 안마주치고 말도 안걸지만 내 주변에서 계속 멤돌잖아. 그게 얼마나 신경쓰이는데. 너는 편하게 말해달라 했지만, 어떻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겠어. 너도 나한테 고백할까 말까 한 학기 내내 고민했던 거 아냐? 근데 나한테 편하게 말해달라니. 솔직히 약간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미안해. 너의 고백을 받아줄 수는 없을 것 같아. 근데 오해하진 말았음 좋겠어. 내가 고백을 거절하는 게 너 자체를 거절한다는 뜻은 아니야. 단지 내가 너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 너는 남자면서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는 남자면서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너의 그런 모습이 싫다거나 그런 게 절대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너랑 사귈 수 없다는 뜻이야. 근데 써놓고 보니까 말이 이상하네? 그니까 나는 이성적으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아닌가? 동성적으로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가? 나도 내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암튼 무슨 소린지 알겠지? 너라면 이런 뒤죽박죽 설명을 대충은 알아들을 거 같아.

근데 이렇게 내가 거절하고나서도 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어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작년부터 같이 했던 추억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아까워서라도 멀어지고 싶진 않아. 너가 작년에 3학년 누나한테 고백받았다고 얘기하면서 같이 빵 터진거나, 야자 째고 영화보러 갔을 때 엄청 좋았어. 그리고 너가 엄마한테 욕먹고 집 나와서 피시방에 있을 때, 교회에 가서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하는 목사님 보면서 빡쳤을 때. 그냥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별관 나무계단에 앉아서 집에 안가고 우리 둘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던게 계속 생각나. 별건 아닌데 행복한거 있잖아. 그런 순간순간들이 쌓여서 요즘은 괜히 살만하다고 느껴지더라구. 너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음 그리고 용기내줘서 고마워. 이건 정말 진심이야. 너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사는지, 요즘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집에서 뛰쳐나오고 싶은지 아니까. 신경쓰이고 속상한 일들이 많은데, 그 와중에 고민하고 고민해서 나한테 고백한거잖아. 그게 참 고마워. 힘든데 용기내는 것 만큼 어려운게 없잖아. 그치?

난 너 덕분에 학교 생활 재밌게 하고 있는 거 같아. 학원 가고 야자 하고 어쩌고 해도 그래도 우리 둘이 노는 게 제일 재밌더라. 그래서 난 너가 지금보다 나중에 더 행복해졌음 좋겠어. 대학가서 자취해서 너네 집에서 탈출하고 알바도 해서 돈도 좀 벌고! 좋은 남자 만나서 연애도 실컷 하고(ㅋㅋㅋ)

여기까지 쓸게! 이거 쓰자마자 너한테 모른척 카톡하면 기분 이상해지겠지만. 그래도 카톡할게. 너가 이 편지 받고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빠이!

너의 라이벌이자 베프이자 고백거절남 Y가 씀.


P.S. 이 글은 고등학교 시절, 동성애자 친구에게 고백을 받았던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따라서 일부분은 사실에 기반하지만, 일부분은 상상으로 덧붙였다. 이 글을 통해 이성애자가 어떻게 동성애자 친구 또는 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또 연인이 아닌 동성 친구 사이에서도 관계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관계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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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 나의 퀴어한 친구에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무탈하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연락 드린지 오랜만에 대화가 아닌 편지로 인사드리려고 하니 어색하고 한편으론 기대되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던데, 그간 서로 연락하지 못했던 건 선생님도 잘 지내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저도 물론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의 저번 만남 때 선생님께서 넌지시 알려주셨던 고민거리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해요. 선생님과 만남 이후에 꽤 긴 시간 동안 선생님 생각을 했었어요. 그 고민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힘들고 외로워도 어떻게든 살아나가려 노력하는 선생님을요. 저에겐 언제나 반듯하고 올바른 사람인 선생님이, 남들과는 다른 ‘나’를 깨닫고 그걸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들까 싶더라구요.

저는요, 선생님이 누굴 좋아하고 누굴 만나고 누구와 섹스하는지 정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선생님을 무척 아끼거든요. 세상에 둘도 아니고 하나 밖에 없는 선생님이고, 유일하게 제가 기댈 수 있는 존재예요. 그런 선생님이 힘든 시간을 겪는 다는 건 저에게도 마음 쓰이는 일이 하나 늘어난다는 뜻이죠.

선생님이 나눠주신 고민에 대해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책도 읽어보고, 혼자서 많은 시간 고민해봤거든요? 근데 결국엔 답이 딱 하나더라구요. 그래도 아무 상관 없다! 양성애자든, 퀴어든, 스스로를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는 선생님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였어요. 우리 모두가 꼭 스스로를 하나의 단어로 증명할 필요는 없잖아요? ‘내가 반쪽짜리 바이처럼 느껴져’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이 참 마음 아팠거든요. 선생님이 여자와 섹스를 하고 싶지만 데이트까진 못할 수 있죠.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 세상에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썸 타고, 연애하고, 섹스하겠어요? 누군가는 섹스만 하고 싶을 수 있고, 누군가는 손만 잡고 하룻밤을 보내고 싶을 수 있죠. 저는 그게 이상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다르잖아요. 달라도 괜찮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 생긴 그대로도 아무 상관없어요.

제가 선생님 입장이라면 앞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터널을 걷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외롭고 다리 아프고 축축하고 힘들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겠죠? 제가 그 터널 속을 같이 걸어드릴 순 없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어요. 이런 제 마음이 선생님에게도 잘 전달 되길 바래요. 비로소 터널이 끝나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 바삭바삭한 햇살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면 저를 떠올려주세요. 선생님을 응원하고 아끼는 사람이 어딘가엔 분명히 있다는 사실까지도요.

저는 선생님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길 바래요. 오늘따라 선생님이 참 보고싶네요. 항상 잘 지낼 순 없어도, 가끔씩 행복한 일이 일어나길.

늘 감사하고 응원해요. 또 연락할게요 :)

나의 퀴어한 친구인 나에게, 내가 씀.


P.S. 이 글은 바이섹슈얼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필자의 대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작성했다. 그래서 편지를 쓴 이도 '나'이고, 편지를 받는 이도 '나'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퀴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자신의 성지향성과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정체성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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